안녕하세요? 나노하입니다. 최근에 블로그가 다시 활성화 되는가 싶다가도, 조금만 느슨해졌더니 벌써 포스팅 안한지가 1주일이 넘어가버리는군요. 분명히 시간이 없는 건 아닌데, 뭐랄까 글 자체가 잘 안적힌다는 느낌이군요. 포스팅도 일종의 습관화라서 한번 멈추면 다시 그 페이스를 회복한다는 게 힘들다는 말이 틀린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조금 리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네이버 블로그에서 티스토리로 넘어오기전에 잠깐 활동했던 모 네이버 카페가 있습니다. 티스토리로 넘어오고, 리뷰양이 급격하게 줄면서 실질적인 활동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제법 양질의 리뷰들이 올라오는 곳이라 참고 정도로 종종 들리는 곳입니다. 그런데 약 1주일 정도 전에 이 카페에서 일부 리뷰어끼리의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 문제의 발단이 된 건 네이버에서 주로 활동하는 모 리뷰어의 공격적인 댓글 때문. 잠시 이 분의 소개를 곁들이자면, 네이버 애니메이션 커뮤니티에서는 꽤 유명한 분으로, 리뷰어들 사이에서도 꽤 알려진 분입니다. 국문학을 전공했다고 하는데 확실히 글솜씨도 뛰어나고, 작품 속 구성에 담긴 의미를 철학이나 각종 인문학 분야와 연결시키는 걸 보면 놀라울 정도입니다. 특히 니시오 이신의 바케모노가타리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소설을 10번 정독하고, 애니메이션을 신(Scene) 별로 구분해서 여러번 반복해서 봤다고 하니, 확실히 리뷰어로서는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아래는 바케모노가타리에 대한 그 분의 비평 중 일부입니다.

왜 바케모노가타리는 명작인가 - 소설까지 보신 분 혹은 애니 시작부분에 제시되는 텍스트(소설 내용이 화면 전체에 처리되는)들 그리고 몽타주들에 주목해보신 분들은 아실껍니다. 아주 파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바케모노가타리가 성취할 수 있었던 것들 ㅡ 그게 인간의 분열상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소외가 애니 전체에 제시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말장난>과 <말>로 효과적으로 제시되는 것을 애니에선 파격적인 시각효과로 재현해낸겁니다. 불편할 정도로 끊기는 그 장면들이 문자 텍스트를 영상서사 텍스트로의 성공적인 전환을 돕는겁니다. 또한 소설 상권의 작가 후기를 보면 알 수 있는 점 - 그것이 말과 말장난에 대한 의미입니다. 니시오 이신의 말대로 바케모노가타리는 괴이를 중심으로 만든 서사가 아닙니다. 말과 말장난으로 범벅되어 탄생된 괴이 이야기로 봐야 맞습니다. 말과 말장난들은 하나같이 상징화된 요소들입니다. 구체적인 물자체가 아니지요. 인간의 관념이 철저히 투영된 무엇입니다.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를 갖는 무엇이 되지 못한, 자기 자신에게 의미를 주지 못한 센죠가하라 히타기와 여러 인물들이 괴물이 되는 것은, 그녀들 스스로 자신에게 괴물스러운 기호, 말로 자신을 무장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말장난과 말들이 끝없이 어긋나다가도 어느 시점에서는, 아라라기 자신을 통해 혹은 오시노라는 중개자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게 만드는 시도는 프로이트적인 자기 회복의 길입니다.


각설하고 사건의 전말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이 분의 경우 자신의 수준 자체가 너무 높다보니 절대 다수의 수준 미달의 리뷰어들에 대해  다소 공격적인 의견을 내비칠 때가 있다는 게 조금 문제가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분의 지적 자체는 분명히 논리적입니다. 다만, 그것을 좋게 구슬려서 이야기 할 수도 있는 걸 너무 직설적으로 '너는 잘못되었다' 식으로 말해버리니 말다툼이 일어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게다가 상대는 풍부한 지식과 논리를 겸비한 국문학도고 이쪽은 이제 겨우 애니 몇 편 본 새내기 리뷰어에 불과합니다. 논쟁에서 상대가 안되는게 당연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제는 리뷰 쓰는 것 자체를 꺼리는 현상까지 나타나게되고, 급기야 카페 매니저가 나서서 주의를 주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 분은 자신이 주의를 받은 것이 납득하기 힘들었는지 '일말의 기본도 안되어 있는 리뷰에 지적을 가한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 라는 장문의 댓글과 함께 카페의 모든 활동을 중단하는 걸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습니다.

사건의 전말을 보니, 모두 저 리뷰어의 잘못이 아니냐고요? 확실히 저 분에게 잘못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1주일 전에 트위터에서 저도 이와 관련해서 열폭한 적이 있으니 말이죠. 그러나 조금 머리를 식히고 우리 냉정하게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조금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어느 시골 고등학교에 야구부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낙후된 시설에 실력도 부족하지만 열정 하나만으로 야구를 뛰는 그런 팀을 상상하고 계신가요? 이런 시골 학교 팀에 모종의 이유로 메이저리그 현역에서 막 은퇴한 코치가 부임해 왔습니다. 한국이나 시골에서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코치는 당연히 팀원들에게 최고의 플레이를 주문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코치가 보기에 팀원들 실력이 진짜 형편없습니다. 구속은 느려터졌고, 타격 자세, 수비 모든 게 엉망입니다. 마음먹은대로 안되니 선수들에게 다그치는 일만 늘어나고, 언성만 높아집니다. 이제는 코치가 무서워서 급기야 야구를 그만두겠다는 사람까지 나오기에 이릅니다. 보다 못한 교장선생님이 코치의 과격한 언행에 대해 주의를 주자 코치에게서 돌아온 대답.
"일말의 기본도 안되어 있는 선수들에게 언성을 높인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입니까?"
얼마 후, 이 코치는 야구부를 그만두게 됩니다.

위 사례가 왠지 낯익은 것 같지 않습니까? 앞서 이야기했던 리뷰어와 위의 코치가 범한 공통적인 실수는 눈높이를 낮추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구속 150KM를 넘나드는 메이저리거가 보기에 시골 고등학교 투수가 던지는 공은 거북이가 걸어가는 것보다 느리게 보일겁니다. 코치가 이 투수에게 아무리 다그치고 화를 낸다고 하더라도, 당장 하루아침에 150KM의 구속이 만들어지는 건 아닙니다. 여기에 이 코치가 기본이라고 알고 있는 메이저리그식 투수 훈련이 이 시골 고등학교 투수에게 맞을리도 없습니다. 결국 이 코치와 시골 고등학교 투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실력의 벽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소통이 이루어지려면 두 가지 길 밖에는 없습니다. 투수가 실력을 올리던가, 코치가 눈높이를 낮추던가. 어느 것이 현실적인가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리뷰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문학도의 눈으로 볼 때, 지금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는 리뷰의 대부분은 아마 기본도 안갖춰져 있는 형편없는 글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주요 소비층의 연령대가 낮은 애니메이션입니다. 제대로 형식을 갖춘 리뷰가 넘친다는 게 이상할 정도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현대 사회의 파편화 같은 작품 속 담겨있는 메시지를 추출해내라는 요구는, 위에서 시골 고등학교 투수에게 갑자기 구속 150KM 공을 던져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이 리뷰어와 야구 코치는 모두 자신의 눈높이를 낮추기를 거부했고, 남들과 소통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역시 멘토로서의 올바른 자세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역으로 현재 넷상에 만연해있는 마구잡이식 리뷰 환경에도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비단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등 많은 리뷰가 장문보다는 단문 위주, 논리적 완결성 보다는 선정적인 감수성을 가진 글이 대부분입니다. 실례로 '애니리뷰'라는 키워드로 검색된 글 중에 절반 이상은 단순한 스크린샷 나열에 재미있었다, 재미없었다 정도의 간단한 감상문정도로 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리뷰어들의 잘못이 아니며, 그 누구도 이것이 기본이라고 말해준적이 없는 블로그 환경 자체의 탓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이런 멘토 기능을 각종 카페나 블로그와 같은 커뮤니티가 맡았으나 이제는 그 자체가 사라져버렸거나 하향 평준화 되어버린 곳이 많습니다.

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신또한 위의 리뷰어처럼 소통을 거부한, 나 혼자만의 이기적인 리뷰를 쓰고 있는 것 아닌지에 대해 뒤돌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리뷰어들을 위한 기본적인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리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직접 만들어보자라는 일념으로 글의 재료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실력에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나 있을지, 오히려 그것이 역효과가 나오지는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섭니다만, 리뷰어들과의 소통을 위해 이번 타이틀은 꼭 한번 제대로 완성시켰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무엇을 쓰든 짧게 써라. 그러면 읽힐 것이다.
명료하게 써라. 그러면 이해될 것이다.
그림같이 써라. 그러면 기억 속에 머물 것이다.

-조지프 퓰리쳐 (미국 언론인, 신문 경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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