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한 그녀들의 하모니 - 아마가미 SS // Prologue 로맨스(Romance) - [명사] 남녀 사이의 사랑 이야기. 또는 연애 사건 - 이 세상에 남의 사랑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게 어디 있을까. 남녀 간의 진실한 사랑 그리고 갈등. 온갖 역경을 딛고 이어지는 남녀 간의 인연을 브라운관을 통해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 사랑이 이어진 것 마냥 즐겁다. 그것이 허구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로맨스 장르가 꾸준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로맨스라는 장르 자체가 영화, 소설, 음악가사 등지에 자주 활용되는 소재이기도 하지만, 유독 남성 구매층이 많은 서브컬쳐에서의 그 입지는 상당히 공고한 편이다. 라이트노벨, 애니메이션, 게임 등 1년에만 수십 개의 로맨스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으며, 지금도 미디어믹스의 일환으로 많은 작품들이 애니화 대열에 합류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남녀들이 등장하고, 이제는 도대체 몇 번째인지도 모를 인연이 작품 속에서 이어지는 시대. 저마다 나는 특별하다고 외치는 로맨스 작품들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는 어떤 작품을 선택해야할까. 이번 시간에는 「아마가미 SS」를 통해 그 힌트를 찾아보자. // 미연시? - 작품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아마가미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 아닌 2009년 엔터브레인사에서 발매된 동명콘솔게임을 원작으로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게임 원작을 가진 작품이 새삼스럽게 드문 건 아니지만, 굳이 원작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작품이 가지는 특유의 시스템 구조 때문이다. 아마가미는 통칭 미연시라고 불리는 장르의 게임이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줄여서 미연시. 갸루게, 에로게, 비쥬얼 노벨 등 게임 특징이나 컨셉에 따라서 불리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세세한 정의, 종류, 역사에 대해서는 접어두자. 이 게임의 핵심은 말 그대로 연애 = 로맨스이다. 게이머는 게임에 등장하는 히로인들과 친해지고 호감도를 높여 끝에는 사랑의 연을 맺는 걸 최종 목표로 한다. 게임에 따라 하렘 왕국 건설 같은 특수한 결말이 가끔 있긴 하지만, 일본은 철저한 일부일처제이므로 대부분의 게임도 이 룰을 따른다. 따라서 게이머는 등장하는 많은 히로인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전개되는 스토리와 결말은 어떤 히로인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 과정 경로를 ‘루트’라고 부른다. 이것이 게임 미연시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시스템의 골자다. // 애니메이션과 미연시와의 차이점 - 애니메이션 ‘학생회의 일존’을 기억하는가? 오프닝도 나오기 전 1화에서 뱉은 그들의 첫 마디는 이렇다. ‘미디어의 차이를 이해해라’ 필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 중 하나인데, 미디어믹스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오늘날 가장 심도 있게 생각해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게임 미연시와 애니메이션의 차이점.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차이점은 작품의 진행방식이다. 미연시의 모든 자유는 항상 게임을 플레이하는 주체, 즉 게이머 손에 있다. 스토리는 게이머의 선택에 따라서 움직이며, 그에 따른 결말도 모두 다르다. 반대로 애니메이션의 선택권은 제작자의 몫이다. TV는 기본적으로 일방형 커뮤니케이션이다. TV에다가 시청자가 아무리 소리를 쳐도, TV는 제작자가 선택한 시나리오대로 한결같이 흘러갈 뿐이다. 여기서 바로 애니메이션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각 히로인들에 대한 시청자들이 느끼는 호감도는 모두 다를 수밖에 없고, 원하는 결말 역시 다르다. 하지만, 일방통행밖에 할 수 없는 애니메이션은 좋든 싫든 한 가지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통상적으로는 가장 인기가 좋은 히로인이 주인공과 이어지는 결말을 선택한다. 그에 따른 보상으로 선택받지 못한 히로인들에 대한 에피소드가 초반에 할당되는 게 일종의 관례다. 그러나 시간과 분량의 제한이 있는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어느 누군가는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는 히로인이 생기기 마련. 따라서 이 과정에서 언제나 팬들과 제작사의 마찰이 생기며, 결말을 놓고 팬들과의 험한 논쟁이 오가는 게 일종의 연례행사처럼 반복된다. 매년 많은 미연시 원작을 가진 애니메이션들이 종영이후에도 꾸준히 잡음에 시달리는 대표적인 이유다. 실제로 인기 미연시를 원작으로 가지고 있는 「D.C 다카포」나 「그대가 바라는 영원」의 경우 결말에 불만을 가진 팬들의 강력한 요청을 수렴하여, 결말이 완전히 다른 OVA 형식의 작품을 제작하는 웃지 못 할 경우가 있기도 했다. 차선책으로 결국 그 누구와도 이어지지 않는 열린 결말 형식을 따르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 이야기 진행이 산만해지고 남과 여가 이어지는 로맨스 장르의 특유의 재미가 사라진다는 측면을 놓고 보면 작품성에서 아무래도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때까지 많은 제작사들이 이 저주같이 뒤를 따라다니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했으며, 지금도 많은 실험적인 연출과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 통하였느냐 1. 옴니버스의 보완 - 앞서 이야기한 애니메이션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아마가미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옴니버스. 옴니버스의 정확한 정의는 따로 있지만, 넓은 의미로는 몇 개의 단편을 결합하여 전체로서 정리된 분위기를 내도록 한 기법을 일컫는다. 단편의 결합. 이것이 옴니버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마가미는 이 단편의 힘을 잘 살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각 히로인별로 일정 분량을 각각 배정한 후, 그 분량 안에서 각 히로인별로 달라지는 스토리의 스타트와 엔딩을 모두 보여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앞서 설명한 미연시 시스템처럼 모든 루트를 시청자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내놓은 일종의 자구책인 셈. 특히 각각의 단편 스토리가 아마가미라는 작품전체를 구성하지만, 그 단편들 간의 간섭이 전혀 없다는 점은 짧지만 강한 몰입감을 줄 수 있는 OVA의 강점을 옴니버스에 적용시킨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특유의 스토리 구성 덕분에 아마가미는 미연시 원작 애니메이션들이 가진 딜레마를 극복하는 동시에 스토리 전개의 유연성을 늘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봤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히로인이 무대 뒤로 밀려날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 아닐까. // 2. 충실한 기본 그리고 변화 - 작품을 구성하는 건 단순히 스토리뿐만 아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가 가지는 위치는 스토리 이상으로 중요하다. 특히 옴니버스 구성을 따르는 아마가미의 경우 탄탄한 스토리보다는 히로인들의 캐릭터성을 무기로 내세우는 방식이라, 캐릭터로 어필하지 못하면 나머지 부분까지 같이 무너지는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제작사 AIC는 이미 캐릭터성이 강조되는 작품을 다수 제작했으며, 그에 대한 경험과 연륜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어떤 것이 중요한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는지 잘 파악하고 있으며, 그래서 더 기본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투박하지 않은 유려한 작화, 히로인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에피소드의 선정, 단편별로 달라지는 엔딩의 연출은 모두 기본에 충실한 결과물인 셈이다. 여기에 아마가미는 작품의 재미를 더하는 소소한 변화 역시 잊지 않는다. 옴니버스 구성을 제쳐두더라도 기존 로맨스 장르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던 내레이션의 등장, 자유로운 카메라 앵글, 광원의 적극적 활용같은 실험적 연출을 확인할 수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런 조그마한 변화가 눈에 띄는 건, 이런 변화들이 어디까지나 탄탄한 기본이라는 바닥위에 쌓아올려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 불통한 점 - 2% 부족해 보이는 로맨스의 깊은 맛. 로맨스는 남과 여가 어떻게 관계를 맺는 계기와 과정에서 우러나오는 원초적 재미에 포인트를 주는 장르다. 사랑으로 인한 갈등과 얽히고설킨 삼각관계는 전통적으로 로맨스가 추구해온 대표적인 스토리 라인이다. 다만, 이 관계묘사에서 필수적으로 따라와야 하는 부분은 이런 표현을 소화해 낼만한 분량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아마가미는 각기 다른 단편을 엮는 옴니버스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여러 루트를 두루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건 바로 양날의 검으로도 작용하는데 그것은 모든 루트를 여유 있게 보여주기에는 할당할 수 있는 분량이 턱없이 모자라다는 사실이다. 사실 옴니버스 형식은 아마가미가 처음으로 시도한 방법은 아니다. 몇몇 작품들이 옴니버스 방식을 통해 제작이 되었는데 로맨스 장르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이 푸른 하늘의 약속을」 이 있다. 옴니버스라는 방법의 선택은 좋았지만, 문제는 애니에 전체 할당된 방송량이 단 1쿨이었다는 점. 스토리 전개를 위해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넉넉한 분량이 없었기 때문에 스토리 전개의 허점 같은 문제들이 노출되면서 결과적으로 실패한 케이스로 기록되었다. 애니메이션은 영상의 나열이다. 단순히 소설이나 게임처럼 텍스트 몇 개 추가하면 끝날 일이 애니메이션은 25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야한다. 따라서 제한된 분량 안에서 어떻게 에피소드를 표현해 낼 것인가가 애니메이션의 중요한 고려요소가 되는데, 옴니버스에서는 그 압박이 타 작품보다 더 심한 케이스다. 이런 부분을 의식했는지 아마가미는 이전 작품들이 간과한 분량 조절 문제를 2쿨을 통해 최대한 여유 있게 늘리고, 중요도가 높은 에피소드만을 뽑아서 스토리 구성이 좀 더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절치부심 노력한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파국으로 치닫는 갈등을 통해 전해지는 긴장감은 먼 나라 이야기며, 몇몇 히로인은 뒤끝이 개운하지 않은 엔딩을 남기기도 했다. 분명히 옴니버스 형식을 사용한 과거 작품들과 비교하면 괄목할만한 성과지만, 그래도 여전히 로맨스 특유의 깊은 맛이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 에필로그 - 요 몇 년간 미연시 원작 애니메이션들의 연달은 실패를 고려한다면 아마가미의 약진은 주목할 만하다. 비록 옴니버스 구성의 문제점을 완벽하게 해결하진 못했으나, 로맨스 장르가 오랫동안 골치를 썩여온 루트 선택의 딜레마를 옴니버스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작품 속 곳곳에 숨어있는 아마가미에 대한 제작진의 열의가 작품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이미 올해 2012년 1분기에 뒷이야기를 다룬 「아마가미 SS+」가 전파를 탔으며, 전작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시청자라면 한 번 기대를 걸어도 좋으리라 믿는다. 추운 겨울, 당신의 옆구리가 시리다면 오늘은 따뜻한 로맨스 한 편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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