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아날로그적 감수성 - [그 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들은 아직 모른다] (아노하나) : 아련하고 먹먹하며 애달프지만 아름답다. 「그 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들은 아직 모른다 (이하 아노하나)」는 러브코미디가 봇물을 이루는 요즘 추세의 재패니메이션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일본 멜로 영화의 교과서적 작품인 「러브 레터」식 감수성을 불러오려고 한다. 여기에 「토라도라」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던 나가이 타츠유키 감독은 특유의 세련된 스토리 텔링으로 이 스케치를 덧칠한다. 어린 시절 의기투합하여 사이좋은 소꿉친구로 지낸 6인방이 멘마의 죽음과 함께 각자의 길로 갈라선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된 진타와 그의 친구들 앞에 멘마는 유령의 모습으로 자신의 부탁을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돌연 나타난다. 그리고 그렇게 갈라졌던 친구들이 또다시 옛날처럼 모이고, 멘마의 죽음으로 인해 멈췄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얼핏 보면 「아노하나」는 이전 영화, 애니, 만화에 걸친 다양한 장르에 걸쳐 사용된 클리셰들을 적당히 이어붙인 듯 보이지만, 이 작품이 조금 더 반짝거리는 이유는 단순히 익숙한 소재들의 활용에서 그치지 않고 기존의 클리셰들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조각 천을 잘못 꿰매면 누더기가 되지만, 잘 꿰매면 퀼트가 되듯이, 이 작품은 드라마 장르의 클리셰 조각으로 만든 꽤 훌륭한 퀼트다. 이런 특징은 작품 진행이 단순히 일렬로 정렬된 레일을 달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적 공간을 해체해서 그것을 퍼즐 끼워 맞추듯이 재조립하는 재치있는 형식적 구성에서도 잘 나타나있다. 마치 원하는 노래를 찾기위해 수없이 앞으로 되감고, 뒤로 빨리 감는 과정을 거치는 카세트테이프처럼, 어린 시절 겪었던 사랑과 우정의 상실, 그리고 그것을 회복하는 과정은 느리지만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빠르고 명쾌한 답을 내주진 못하지만, 은은하면서 아련한 향수를 떠올리게하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관객들에게 천천히 그리고 깊이 있게 각인시킨다. 때로는 작위적인 설정에 예측가능하고, 감정을 쥐어짜는 이야기 전개를 보여주지만, 「아노하나」는 이런 단점들을 특유의 장점으로 커버해낸다. 여기에 전혀 신인답지 않은 패기로 가득찬 카야노 아이의 연기는 나가이 타츠유키 감독이 깔아놓은 무대를 더욱 빛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재패니메이션의 드라마 장르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가슴 벅찬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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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하의 애니클립 - 그 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들은 아직 모른다(아노하나) : 클리셰 조각으로 만든 꽤 훌륭한 퀼트 // 무엇인가 소원이 있어서 이승에 남은 유령이 있고, 그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유령의 흩어진 옛 친구들이 다시 모여 유령의 소원을 이뤄주려고 한다. 이 한 줄 스토리요약만 읽고 보면, 「그 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들은 아직 모른다」는 이미 영화에서 몇 번이나 우려먹은 진부한 클리셰 덩어리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조각 천을 잘 못 꿰매면 누더기가 되고, 잘 꿰매면 퀼트가 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작품은 드라마 장르의 클리셰 조각으로 만든 꽤 훌륭한 퀼트다. 삶과 죽음, 그리고 성장하면서 알게 모르게 잃어버리는 것들. 신선하다고 할 만한 요소는 분명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진부하지만도 않다. 십대들의 단순한 치정극이 그들의 성장담, 그리고 삶에 대한 고찰과 맞물리면서 태어나는 스토리 구성은 충분한 밀도와 흡인력을 제공한다. 많은 드라마 장르들이 실수하는 부분은 감동적 결말 하나에 올인해서 결말에 이르는 여정 자체가 지루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맹점을 특유의 스토리로 극복한 나가이 타츠유키 감독의 재치는 눈여겨볼만하다. 더불어 이 퀼트를 인상적인 스티치로 마무리한 카야노 아이의 멘마 연기는 데뷔 2년차 신인 성우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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