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asuhiro YOSHIURA / DIRECTIONS, Inc.




언제인지는 알 수 없는 근미래의 일본. 로봇이 상용화된 지도 벌써 한참이 지났고, 이미 인간형 로봇인 안드로이드도 생활에 널리 보급되어 있는 상태이다. 로봇 윤리위원회의 영향으로 안드로이드를 '가전제품'으로 취급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자리잡아 있었다. 하지만 머리 위에 떠 있는 링 이외에는 인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겉모습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안드로이드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이들이 나타나면서 조금씩 사회문제로 거론되고 있기도 하였다.


고교생인 리쿠오 역시 어릴 적부터의 교육에 의해 안드로이드를 그저 편리한 도구 정도로 생각하며 이용해 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리쿠오는 자신의 집의 가사용 안드로이드인 사미의 행동기록 속에서 기묘한 점을 발견한다. 의아해 하던 리쿠오는 결국 친구인 마사키와 함께 사미의 행동 경로를 추적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더듬어간 좌표의 마지막 지점에는 "인간과 로봇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내건 기묘한 카페 '이브의 시간'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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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한번쯤 학교에서 '과학 상상 그리기 대회'라는 걸 참가해본 적이 있으실거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에서 우러나온 여러가지 상상들을 엿볼 수 있는 그림들을 엿볼 수 있는 한 해에 한 번 있는 행사. 많은 소재와 아이디어가 쏟아지지만, 그 중에서도 절대로 빠지지 않는 건 바로 로봇.




여러분은 미래의 로봇이라고 하면 어떤 상상이 떠오르시나요? 전문가들은 앞으로 로봇의 기능이 공장과 같은 정형화된 공간에서 정밀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 데 그치치 않고, 점차로 사회나 가정과 같은 비정형화된 공간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수행하는 지능형 로봇이 개발될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인간생활의 곳곳에 로봇이 투입되어 로봇이 인간을 보조함으로써, 인간이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뒤집어서 생각해볼까요? 인간과 닮은 외형을 가졌고, 생각과 감정을 가진 인간형 로봇. 무언가 표시가 없다면 인간과 구분조차 되지 않습니다. 월등한 지능에 지칠줄 모르는 로봇은 당신의 일터를 빼앗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조차 모호해지고, 인간과 로봇의 갈등의 골은 깊어집니다.

로봇의 등장으로 인해 나타날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언급해보았습니다. 이번에 리뷰할 작품은 앞으로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면서 나타날 부정적 측면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미래에 우리가 겪게 될지도 모르는 인간과 로봇 사이에 일어날 갈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예상은 어느쪽이신가요? 긍정인가요? 부정인가요? 나노하의 8번째 리뷰 작품 [이브의 시간]입니다.










이브의 시간에서 언급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은 앞으로 미래 사회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민감한 사항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위협받는 인간의 존엄성, 로봇의 정체성 인정에 관한 문제, 로봇과 인간 사이의 사랑 등은 하나같이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들이며, 미래사회의 닥치게 될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브의 시간의 분위기는 암울하거나 무겁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품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따뜻함을 유지하며, 등장인물들 마다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통해 소재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는 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회피하는 것을 방지하고, 주목을 이끌어내는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이브의 시간이 여느 다른 비슷한 작품들과 차이점을 보이는 부분은 로봇과 인간 모두를 평등한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여타 다른 작품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이런 신선한 설정은 런닝타임 내내 시청자들이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본점에서는 인간과 로봇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앞서서 로봇에 대한 문제를 다룬 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은 피해자라는 전제조건을 가지고 출발하는 작품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이브의 시간은 로봇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이라는 두 가지 시각을 제시하는 동시에, 만물은 평등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길 원하는 로봇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로봇을 억압하는 인간. 하지만 이 관계에서 그 어느 누구도 악당은 없으며, 로봇과 인간 모두 미래 사회가 낳은 피해자들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인간 중심의 시각이라는 기존의 틀을 깬 제작진의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이브의 시간 한 에피소드의 런닝 타임은 15분, 총 화수 6화. 일반적인 TV 애니메이션이 25분에 최소 1쿨(12화)를 할애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OVA 급의 짧은 분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OVA 애니메이션들이 그렇듯, 지나치게 짧은 런닝타임은 수박 겉핡기식의 스토리 전개라는 문제점을 야기합니다. 이브의 시간에서 다루는 소재가 사회적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면 좀 더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소위 말하는 대형 애니메이션 기업이 소속이 아닌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팀으로 이 정도 퀄리티를 내 준 야스히로 감독에게는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역시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에 너무나도 짧은 분량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안드로이드에 대한 소재는 이전 작품에서도 많이 사용된 소재인 만큼, 이브의 시간이 독창적인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갈등이라는 다소 민감한 사항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면서도 두 쪽의 입장을 모두 따뜻한 시각에서 보여준 부분은 야스히로 감독의 잠재능력을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로봇과 인간의 갈등이라는 소재를 다룬 이브의 시간. 그러나 작품의 결말에서도 감독은 갈등에 대한 명확한 결말이나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보여준 마사키와 텍스의 화해의 장면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갈등.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폭력과 억압이 아닌 서로간의 이해와 배려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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