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하의 애니클립 - 꽃이 피는 이로하 (꽃이 피는 첫걸음): P.A Works의 정공법 //그 동안 P.A Works는 신생 제작사답게 많은 새로운 시도를 해왔다. 「카난」, 「엔젤비츠」에서 보여준 밀도있는 액션 연출과 「Another」의 심리적 공포를 컨트롤하는 그들의 능력은 상업적 성공여부를 떠나서 괄목할만한 결과물이었다. 혹자는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들의 특기이자 정체성이라고 부를만한 장르는 역시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아침드라마 같았던 그들의 처녀작 「트루 티어즈」의 당시 임팩트는 생각외로 놀라운 것이었으니까. 이런 부분을 생각하면 「꽃이 피는 이로하」는 과거로의 회귀이자, 전작에서 보여주지 못한 드라마 장르에서의 재도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이로하는 성장드라마의 전형적인 공식에서 단 한 순간도 벗어나지 않는다. 여관에서 일하는 소녀와 그 주변 등장인물들의 위기와 해결과정을 다룬 플롯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시청자들의 예상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소 뻔하다 싶은 스토리 때문에 실망할법하나, 이런 뻔한 성장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로하가 여전히 울림을 주는 이유는, 드라마 장르에 특기를 가지고 있는 P.A Works의 정공법 때문이다. 꿈과 희망이라는 요즘 시대치고는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만한 이 소재들을 이로하가 굳이 에둘러서 표현하지 않는 건 제작진 나름의 자신감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작품의 전반적인 호흡이 물 흐르듯이 흘러가지 않고, 집중력 있는 초반, 후반과 달리 중반 파트가 굉장히 루즈해진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적절한 시기에 뚜껑을 열어 주위를 환기시키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로하는 이 부분에 대해 굉장히 미숙한 대처를 보인다.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중간 고갯길이 좀 길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팍팍한 다리를 주물르며 가다보면 꼭대기에선 온 몸을 적시는 시원한 바람 한 줄기 맞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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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하의 애니클립 - 비탄의 아리아 : 그들이 가진 컬러 // J.C Staff는 다작을 하는 제작사지만, 그들이 가진 컬러는 꽤 뚜렷한 편이다. 특히 2000년대 중반 라이트노벨 애니화붐에 일조한 「작안의 샤나」와 「제로의 사역마」는 그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신화이며, 이 작품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츤데레 캐릭터로 일약 스타가 된 성우 쿠기미야 리에를 굉장한 자랑거리로 여기는 듯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비탄의 아리아」는 제작사로서의 J.C Staff가 이때까지 지녀온 그들만의 컬러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캐릭터를 살리는 세부적인 표현력이나 특유의 연출은 여전하다 싶을 정도다. 그러나 듣기 좋은 꽃노래도 세 번 들으면 지겹다고, 그들이 내놓을 수 있는 메뉴는 이제 식상하고, 강산이 마르고 닳도록 들은 쿠기미야 리에의 츤데레 연기는 좋고 싫음을 떠나서 측은하게 여겨질 정도다. 작품은 배경, 설정이 스토리 전개와 전혀 손발이 맞지 않는 탓에 원작이 가지는 강점을 잘 살리지 못하는 모양새고, 전개를 한곳으로 집중시키지 못하는 탓에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액션이라는 장르에도 불구하고 액션 신에 대한 연출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도 마이너스 요소. “이제는 J.C Staff가 만들면, 작품이 후져보인다"는 의견에 절대 동의하지 않았고, 그들의 허망한 최근 필모그래피 안에서조차 늘 최소한의 미덕을 찾아내곤 했지만, 이 작품만큼은 아니다. 과거도 좋고, 컬러도 좋지만, 이제는 J.C Staff에 새로운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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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하의 애니클립 - 이국미로의 크로와제 : 시청 전에 색안경은 벗어주시길 // 「이국미로의 크로와제」는 19세기 일본문화가 유행하던 유럽을 배경으로, 일본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유네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눈에 띄는 스토리나 아이디어가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정제된 연출과 성우들의 연기력이 돋보인다. 특히 19세기 프랑스에 대한 뛰어난 현장고증과 세세한 부분의 표현력은 이 작품의 백미. 노파심에 하는 이야기지만, 행여 당신이 이 작품의 주제는 ‘자포니즘에 대한 무한찬양’이라는 풍문에 보기를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 보고나서 판단하자. 자국 문화에 대한 다소 오버스러운 표현이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 작품의 주요포인트는 결코 일본문화만세가 아니다. 그보다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충돌함으로써 생기는 컬쳐쇼크에서 비롯된 소소한 일상의 재미에 뚜렷한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니 이 작품을 보기 전에는 반드시 지금 당신이 쓰고 있는 색안경은 벗어두자. 그러면 이 작품의 숨겨진 매력과 대면하는 게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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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하의 애니클립 - 스파이럴 ~ 추리의 끈 (추리게임 뫼비우스의 띠) : 묻지마식 달리기 // 「스파이럴 ~ 추리의 끈」은 10년 전, 「아즈망가대왕」으로 확실한 탄력을 받은 J.C Staff가 제작한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로컬라이징이 이루어져서 「추리게임 뫼비우스의 띠」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다. 갑자기 종적을 감춘 형을 찾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블레이드 칠드런’이라는 저주받은 아이들의 존재. 태어날 때부터 저주받은 아이들이라니 얼마나 그럴싸한 아이템인가. 그러나 그렇게 흥미로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빈약한 이야기의 합리와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허술함 탓에 강렬한 첫 인상은 뒤로 갈수록 무참하게 허물어져 내린다. 극 중 주인공과 블레이드 칠드런 사이에서 벌어지는 추리 배틀은 충분히 볼만한 요소를 제공하고 있지만, 관객들이 납득할만한 이유까진 제공하지 못한다. 그들이 왜 저주받았는지, 왜 죽어야하는지에 대한 모든 의문에 대한 답변을 거부한다. 묻지마식의 스토리 전개가 상황에 따라선 관객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킬 수 있는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필요한 설명조차 생략해버리는 이 작품의 구조는 호기심은커녕 보는 이들의 짜증을 증가시킬 뿐이다. 목적지도 모른 채 가속 페달만 밟아대는 택시에 탄 기분이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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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하의 애니클립 - 충사 : 옴니버스의 좋은 예 //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는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약점. 그것은 장르적 특성상 에피소드 사이의 연결고리가 약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작품 속으로 쉽게 빠져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옴니버스 형식은 재미있게 만들기 힘들다. 이런 부분을 생각하면 「충사」는 어려운 길을 갔다.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서, 굉장히 재미없는 작품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했던가. 그런 의미에서 「충사」는 잇몸으로 차돌을 씹어 먹는 작품이다. 하나의 큰 작품으로 집중시킬 수 없다면, 옴니버스가 가지는 단편의 힘으로 극복한다. 이것이 「충사」가 택한 전략이며, 고집스러울 정도로 옴니버스 장르의 교과서적 공식에 충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맺고 끝맺음이 확실하고, 25분의 소중한 러닝타임을 쓸데없이 낭비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군더더기 없는 집약적인 단편 구성이 옴니버스의 강점을 돋보이게 만든다. 뒤가 궁금해지는 다음 이야기가 없어도 우리는 다음에 나올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하게 된다. 옴니버스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뿜어내는 알 수 없는 묘한 끌림이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훌륭한 드라마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과장하거나 감동을 절대 강요하지 않는 절제미와 스토의 분위기를 살리는 연출과 음악 역시 돋보인다. 이 정도 결과물이면, 옴니버스 기법이 자주 활용되고 있는 요즘 시대에 지표가 될 수 있는 옴니버스의 좋은 예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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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하의 애니클립 - 러브돌 ~ Lovely Idol : 개척자와 좋은 작품의 관계 // 「러브돌」은 Lovely Idol의 준말로서, 제목에서도 쉽게 유추해 낼 수 있듯이, 신인 아이돌이 스타의 자리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을 그리는 성장드라마다. 「만월을 찾아서」부터 시작된 아이돌 육성이라는 타이틀과 당시 06년부터 시작된 캐릭터 산업의 붐이 만들어낸 합작품으로, 작년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은 「아이돌마스터」와 상당히 비슷한 코드를 가지고 있다. 표현이 적절할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장르적 측면에서 볼 때 「러브돌」은 분명 개척자다. 그러나 개척자라는 위치가 반드시 좋은 작품이라는 개념과 연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 작품은 몸소 보여준다. 드라마는 갈팡질팡하고, 감동을 위해 마련된 장치는 뜬금없으며, 하다못해 이 작품의 핵심 볼거리랄 수 있는 라이브 장면조차 현장감과는 거리가 멀고, 성우들의 연기는 틀에 박혀 있다. 긴장감 조성을 위한 매니저와 아이돌 사이의 갈등관계를 엮어보려는 제작진 나름의 시도가 눈에 띄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작품의 전체적 호흡만 흩트릴뿐이다. 총체적 난국이라는 표현은 결코 야박해보이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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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하의 애니클립 - 엔젤비트(엔젤비츠) : 지나친 기대도, 지나친 반발도 없다면 // 요 몇 년간 대중들로부터 가장 시끄러웠던 작품을 고르라면, 필자는 단연 「엔젤비트(엔젤비츠)」를 꼽는다. KEY사의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 마에다 쥰이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처녀작이라고 하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대중들의 기대치를 올리기에는 충분했다. 「에어」, 「카논」, 「클라나드」에 이르기까지, 마에다 쥰이 쓴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유사한 전략을 따른다. 이야기의 합리와 호흡을 일정 부분 희생시키는 대신, 감동을 부채질하는 코드를 스타카토 마냥 늘어놓는 것이다. 관객이 왜 그런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틈도 없이,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정의 물결이 작품전체를 덮어버리는 식이다. 나쁘게 말하면 눈속임이지만, 좋게 말하면 영리하다. 「엔젤비트(엔젤비츠)」 역시 전작만큼 낭만적이다. 다만, 전작만큼 영리하진 못했다. 기존의 전략을 사용하기에는 운신의 폭이 너무 좁았고, 결과적으로 감동적 결말보다 희생된 합리가 더 크게 비쳐지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렇게 설명했음에도 필자가 굳이 이 작품에 대해 손가락을 내리지 않는 이유는 앞서 설명한 흠이 대중들에 의해 지나치게 과장된 부분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사후세계의 컨셉과 캐릭터, 음악의 개별적 요소는 충분히 매력적이며, 그는 여전히 편하게 볼 수 있는 평균 수준 이상의 오락 애니를 만들어내고 있다. 전작과 비교하면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물이라는건 변함없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기대하는 높은 기대치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을 때 경우다. 방송 후 2년인 지금, 이 작품에 대한 지나친 기대도, 지나친 반발도 필요없을 것이다. 필요한 건 작품과 관객이 일대일로 직접 마주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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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하의 애니클립 - 오오카미 씨와 7명의 동료들 : 빌려온 상상력의 한계 // 일반적인 러브 코미디 장르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동서양의 각종 동화와 민담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컨셉을 차용했다는 점은 확실히 신선했다. 물론 이 작품이 10년 전쯤에 나왔다면 말이다. 동화 속 등장인물을 가져와 재해석했다는 부분에서 좋든 싫든 드림웍스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 1억 달러씩 투자되는 헐리우드 애니메이션과 고작 해봐야 제작비 3백만 달러로 만드는 재패니메이션. 같은 저울대에 올리는 건 조금 너무하지 않나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꼭 작품이라는 게 투자된 돈의 양만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비교 못 할 상대도 아니다. 사실 서로 계급장 떼고 목욕탕에서 알몸으로 붙었다면, 완패까진 아니어도 한번 싸워봄 직한 상대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오카미 씨와 7명의 동료들」은 ‘짝퉁’이라는 계급장을 떼는 것조차 버거워보인다. 등장하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은 단순히 동화적 컨셉 자체만 패러디해서 끼워맞추고 있을 뿐, 결국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러브 코미디의 틀은 깨진 못한다. 상상력을 빌려온 부분까지는 좋았지만, 빌려온 상상력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뚜렷한 한계가 아쉽다. 내레이션의 아라이 사토미를 비롯한 호화 성우진의 연기도 이 작품의 허물을 덮기에는 역부족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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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하의 애니클립 - 그 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들은 아직 모른다(아노하나) : 클리셰 조각으로 만든 꽤 훌륭한 퀼트 // 무엇인가 소원이 있어서 이승에 남은 유령이 있고, 그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유령의 흩어진 옛 친구들이 다시 모여 유령의 소원을 이뤄주려고 한다. 이 한 줄 스토리요약만 읽고 보면, 「그 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들은 아직 모른다」는 이미 영화에서 몇 번이나 우려먹은 진부한 클리셰 덩어리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조각 천을 잘 못 꿰매면 누더기가 되고, 잘 꿰매면 퀼트가 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작품은 드라마 장르의 클리셰 조각으로 만든 꽤 훌륭한 퀼트다. 삶과 죽음, 그리고 성장하면서 알게 모르게 잃어버리는 것들. 신선하다고 할 만한 요소는 분명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진부하지만도 않다. 십대들의 단순한 치정극이 그들의 성장담, 그리고 삶에 대한 고찰과 맞물리면서 태어나는 스토리 구성은 충분한 밀도와 흡인력을 제공한다. 많은 드라마 장르들이 실수하는 부분은 감동적 결말 하나에 올인해서 결말에 이르는 여정 자체가 지루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맹점을 특유의 스토리로 극복한 나가이 타츠유키 감독의 재치는 눈여겨볼만하다. 더불어 이 퀼트를 인상적인 스티치로 마무리한 카야노 아이의 멘마 연기는 데뷔 2년차 신인 성우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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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하의 애니클립 - 성검의 블랙스미스 : 진부한 반쪽짜리 결과물 // 「성검의 블랙스미스」는 우후죽순 제작된 과거를 비교하면, 요즘은 꽤 찾기 힘들게 된 중세 판타지 장르의 2000년대 후반을 장식하는 몇 안 되는 작품이다. 블랙스미스(대장장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특이점을 제외한다면, 이 때까지 중세 판타지 장르가 보여주었던 선례들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나쁘게 표현하면 이런 종류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어떤 진부함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어디선가 본 악의 세력과 정의감에 불타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어디선가 본 주인공의 숨기고 싶은 과거가 드러난다. 여러 가지 클리셰들로 얽히고설킨 스토리는 방향감각을 잃고 표류하며, 중세 판타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액션에 대한 연출도 다소 미적지근하다. 설상가상으로 이 작품은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스토리에 대한 매듭도 짓지 못한 채, 엔딩 크레딧을 올렸다. 반드시 속편을 만들겠다는 제작진의 강한 의지였는지, 뒷이야기가 궁금하면 원작 소설을 사서 읽어보라는 무언의 압박인지, 아니면 그 둘 다인지는 보는 이들의 판단에 맡긴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반쪽짜리 결과물이라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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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하의 애니클립 -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 : 선택과 공감의 재미 //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인생을 길에 비유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이처럼 우리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결과를 수반한다.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는 프로스트가 말하는 ‘인생에서의 선택’에 대한 고찰인 동시에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가상적 시나리오에서 우러나오는 재미를 추구하는 작품이다. 루트 시스템을 따르는 미연시 장르도 역시 선택의 재미가 근본이 된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하긴 하지만, 미연시가 장밋빛 해피엔딩이라면, 다다미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배드엔딩의 나열에 가깝다. 그리고 작품내내 인생이란 것은 결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을 상기시킨다. 주인공의 선택에 따라서 벌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의 나열이라는 컨셉은 옴니버스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후반부에 모든 시나리오를 통합하는 의외성이 인상적이다. 분명 최근 흐름에 편승하는 그런 종류의 세련된 작품은 아니지만, 대중들의 공감이라는 소재를 이토록 힘 있게 표현한 작품을 본 게 얼마만인가. 일상물들이 범람하는 진흙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진주의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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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하의 애니클립 - 우주의 스텔비아 : 나데시코의 벽 // 「우주의 스텔비아」는 요 몇 년간 소식이 없다가, 최근에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사토 타츠오 감독의 초창기 SF 라인업 중 하나다. 작품은 항성 폭발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은 인류가, 이후 찾아올 재앙을 극복하는 과정과 등장인물들의 성장기를 담고 있다. SF 드라마로서 그 상상력도 나쁘지 않고, 우유부단하고 찌질한 히로인이라는 다소 어려운 역할을 맡은 성우 노나카 아이의 열연 역시 꽤 볼만하다. 게다가 「기동전함 나데시코」의 아버지 사토 타츠오 감독이니, 이 작품에 대해 연출의 기본기를 운운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슬그머니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게 되는 건, 타츠오 감독의 SF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너무 컸던 이유일 수도 있다. 각 등장인물들의 갈등 속에서 펼쳐지는 감정묘사는 세세하지만, 지나치게 근시안적 표현에 집중한 나머지, 갈등이 해결에 이르는 과정은 왠지 납득하기 힘들다. 2쿨이라는 다소 많은 분량 때문인지 분위기를 이어가는 호흡은 일정치 않고 자주 끊기며,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흡입력 부족이 아쉽다. 행여 타츠오 감독의 전작 나데시코를 염두해두고 본다면, 그 기대는 넣어두자. 괜찮은 결과물임에는 이의가 없지만, 스텔비아가 나데시코라는 이름의 커다란 벽을 넘기에는 버거워 보이는 게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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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하의 애니클립 - DOG DAYS (도그 데이즈) : 왕위를 계승중입니다 // 세븐 아크스가 제작한 7년만의 오리지널, 나노하 시리즈를 탄생시킨 스태프들이 재집결했다는 사실들을 놓고 본다면, ‘포스트 나노하’가 연상되는 건 비단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7년 전 그들의 첫 오리지널 작품인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가 다소 덜 성숙한 하룻강아지였다면, 「DOG DAYS」는 풍월을 읊는 7년차 서당개에 가깝다. 플롯의 구조자체는 꼬아놓은 부분없이 단순하지만,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강한 흡입력이 인상적이다. 그동안 다져온 노하우를 뽐내듯 액션신의 표현은 전보다 유려해졌고, 세세한 연출적 요소도 신경 쓴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대대로 내려오는 제작사 전통처럼 취급되는 고질적인 작화붕괴를 참고 볼 수 있는 약간의 인내심만 갖고 있다면, 꽤 좋은 결과물이다. 나노하라는 큰 한 방 이후에 이래저래 헛스윙만 휘둘러오던 제작사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기분 좋은 안타 하나를 만들어낸 셈이다. 성인용 OVA나 만들던 제작사 세븐 아크스가 지금의 규모로 성장하게 된 원동력은 나노하였다. 과연 「DOG DAYS」가 나노하가 맡고 있던 왕위를 계승할 수 있을까. 그건 좀 더 지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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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하의 애니클립 - 신만이 아는 세계 : 그럴듯한 명분, 실망스러운 과정 // 정통 로맨스에 로맨틱 코미디까지 합치면 로맨스 장르가 대중화 수준을 넘어 거의 매분기에 몇 개씩 쏟아진다고 표현해도 과장이 아니다. 슬슬 이쯤 되면 애니메이션 속 남주가 아리따운 미소녀들과 사귀는데 더 이상 무슨 명분이 필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신만이 아는 세계」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미연시계의 함락신이라고 불리는 소년이 도주혼에 씌인 소녀들을 구하기 위해 히로인들을 차례로 공략한다는 설정은 꽤 그럴듯한 명분으로 들린다. 여기에 공략된 히로인들은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편리한 설정까지 추가한 덕분에, 페러렐 월드의 장점만 쏙 빼먹는 영리함까지 갖췄다. 그러나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가벼움이라는 핑계를 대기에도 이 작품의 깊이는 너무나 얕아서 밑천이 다 드러날 지경이다. 정말 단순히 웃기려고 만든 건지, 게임 속 세계에 사는 주인공이 현실 세계의 연애를 통해 한 걸음 성장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건지도 딱히 명확하지 않다.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중간하게 웃기고, 어중간하게 진지하다. 내세운 명분에 비하면 결과에 이르는 과정은 실망스럽다. 여자는 단순히 남자에게 공략되어야 할 대상에 불과하며, 여성의 행동은 모두 남자가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라는 미연시 플래그 시스템의 무한찬양 또한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다분히 성차별적이며, 자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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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하의 애니클립 - 돌아가는 펭귄드럼 : 늦춰진 왕의 귀환 // 90년대를 주름잡은 마법소녀물인 세일러문, 우테나 시리즈의 아버지, 이쿠하라 쿠니히코 감독. 우리가 그의 이름이 걸린 작품을 보기까지 무려 11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강산이 한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 표현을 빌리자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왕의 귀환이다. 11년만에 돌아온 그의 도전은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돌아가는 펭귄드럼」. 유독 다른해 보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 흥했던 2011년.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를 필두로 시작된 흐름이 「그 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들은 아직 모른다」를 거쳐 이 작품에까지 이어지리라 쉽사리 확신했던 건 너무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 대한 반가움이 앞섰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11년 만에 재회한 친구는 그 때 그대로였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그 친구가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 나팔바지와 자기의 얼굴의 반을 가릴 정도의 알이 큰 안경을 끼고 나와서는 대뜸 ‘우리 옛날이 더 좋았잖아’라고 나에게 푸념한다는 것이다. 이쿠하라 감독은 가치관이 뚜렷한 인물이다. 최소한 이 때까지 내가 봐온 애니메이션 감독들과 비교해보면 그렇다.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언제나 명확하고 간단하다. 다만, 그걸 절대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넌지시 던질 뿐이다. 그것이 90년대의 불문율이자 하나의 트렌드였다. 이쿠하라 감독은 언제나 이 틀 안에서 그만의 독특한 연출이라는 정공법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전달해왔다. 「돌아가는 펭귄 드럼」 역시 이 룰을 그대로 따른다. 특색있는 연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카오스틱한 시간 구성, 근친과 스토킹같이 어두운 사회문제에 대한 거침없는 표현은 옛날 생각이 날 정도로 여전했다. 그러나 11년이라는 세월은 속일 수 없는 것일까. 그의 표현은 예전만큼 힘이 느껴지지도, 강한 전달력을 내포하고 있지도 않았다. 과거 우리가 눈빛만 보고도 서로 모든 걸 알 수 있었던 사이라면, 지금은 그가 나에게 일일이 설명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답답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나도, 그도 예전의 뜨거움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지쳤다. 내가 기대했던 왕의 귀환은 계획보다 조금 뒤로 늦춰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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