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나노하입니다.

설은 잘 지내셨나요? 2011년 1월 1일의 해돋이를 본 게 얻그제 같은데, 벌써 2월입니다. 작년 이맘때쯤에는 티스토리에 거의 빠져 살다시피 했었습니다만, 요즘은 제 블로그에 로그인 해보는 게 손에 꼽을 정도네요. 1년 전과 비교해서 블로그에 대한 제 열정이 많이 식은 탓일까요? 조금 씁쓸하네요. 오늘은 더 이상 Weekly가 아닌 Monthly로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오랜만에 돌아온 Weekly Focus 시간입니다.



플라네테스


  90년대 재패니메이션을 상징하는 것들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SF 장르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코드이기도 합니다.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건담, 공각기동대, 에반게리온과 같은 불후의 명작들 역시 모두 SF 장르의 황금기로 불리는 90년대 시기에 제작되었습니다. 2000년도에 들어오면서 그 기세가 다소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SF = 로봇 전대물이라는 공식은 꽤 오랫동안 적용되었습니다. 이런 로봇 전대물이 주름잡던 시대 속에서 등장한 작품이 오늘 소개드릴  「플라네테스」 입니다.

  SF는 Science Fiction의 약자입니다. 여기서 Fiction은 단어 그대로 '허구'입니다. 단순히 몸집이 작다고 우주비행사가 되거나 (주: 로켓걸), 미소년이 등장해 천재적인 기질을 발휘하며 로봇을 타고 우주를 정복한다는 내용은 '허구'가 강조되는 SF 장르에서 별로 놀랄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SF 장르만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특권이기도 하니까요.  「플라네테스」 역시 2075년의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SF 장르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의 Fiction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허무맹랑한 허구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플라네테스」 는 Fiction 속에서도 철저히 Reality (현실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 속 배경의 우주는, 많은 SF 장르들이 재미를 위해서 무시해버리는 '무중력 상태이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라는 간단한 과학적 지식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습니다. 작품 속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특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요즘 작품들에서는 차고 넘치는 미소녀나 미소년은 더더욱 아닌 일반 소시민으로 그려집니다. 이런 식의 사실적인 설정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작품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고,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픽션은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허구가 가미된 픽션은 스토리와 비쥬얼로 부여할 수 있는 재미로 한정되어 있으며, 이 요소들의 재미가 떨어질 경우 급속도로 힘을 잃습니다. 반면   「플라네테스」 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픽션 속의 리얼리티는 SF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재미를 그대로 살리면서 '실제로 그것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공감의 재미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사실과 공감' 이라는 이 작품의 코드는 스토리에서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얼핏보면 우주의 쓰레기를 줍는 '데브리과'의 일상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실상은 전혀 다른 곳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됩니다. 꿈의 추구와 현실의 안주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간의 내면적 갈등. 끝없는 발전과 성장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파괴, 그리고 가지지 못한 자의 소외감.  「플라네테스」 의 배경은 분명히 2075년의 우주이지만, 거기서 묘사되고 있는 것들은 지금 우리가 겪고있는 개인, 사회, 인류의 문제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는 공감의 재미가 단순히 설정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통해 한층 강화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플라네테스」 는 픽션속 리얼리티라는 인상적인 연출을 선보이는데 성공했고, 지금까지도 SF 장르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 급격히 악화된 애니메이션 시장탓인지 2007년도에 제작된  「문라이트 마일」 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플라네테스」 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 나오지 않고 있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습니다. 여전히 미소녀 애니메이션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오늘이지만, 과거  「플라네테스」 가 로봇 전대물이 주름잡던 시기에 등장했던 것처럼, 올해도 애니메이션계에 한 획을 긋는 작품이 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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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리카쨔마 2011.02.07 0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들은 적은 있는데 가물가물한 작품이네요

    • BlogIcon 나노하. 2011.02.13 18: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시에는 꽤 주목을 받은 작품이긴한데..
      2003년, 지금으로 부터 벌써 8년가까이 되가는 고전이기도 하니
      사실 오랫동안 애니를 보신분이 아니라면 지나치기 쉬운 작품입니다.

  • BlogIcon 곽밥 2011.02.07 03: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 한번 보려다가 잊었는데, 다시 생각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어떻게 맞춰서 연출 했는지 꼭 확인해봐야겠습니다.

    • BlogIcon 나노하. 2011.02.13 18: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타니구치 고로 감독의 초창기 시절의 과감한 연출력을 과시하는 작품입니다.
      작품성 측면에서도 분명히 가치가 있는 작품이니 꼭 한번 보시길...

  • BlogIcon 하얀별 2011.02.07 09: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담 생각나는 군요!

  • BlogIcon 우시오. 2011.02.07 19: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회를 잘 드러내는 애니메이션은 생각 외로 꽤 흥하는 법이죠.

  • BlogIcon 影猫 2011.02.08 01: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처음 들어보는 작품이로군요..;;

    • BlogIcon 나노하. 2011.02.13 18: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코드기어스로 유명한 타니구치 고로 감독의 초창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완성도 자체는 코드기어스와 비교해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니,
      한번 시도해보셔도 좋을만한 작품입니다.

  • BlogIcon PinkCheckSchool 2011.02.08 01: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요런 작품도 있었나요? 처음 들어보는데 황당무계보다는 리얼한 메카닉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괜찮을 것 같네요. 시간 나면 봐야겠습니다.

    사실 로봇물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건담 우주세기 시리즈도 SF 로봇물치곤 나름 리얼한 편이지요. 뭐 뉴타입이니 뭐니, 허구적인 요소나 설정 구멍도 꽤 많지만 전쟁의 묘사라든지 여러가지로 너무 (의외로) 리얼해서 적잖게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 BlogIcon 나노하. 2011.02.13 18: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메카닉을 기대하시고 보신다면 조금 실망하실수도 있을겁니다.
      플라네테스는 사실 메카닉의 요소는 거의 빠져있고, 굳이 따지자면 드라마에 가깝다보니..

  • BlogIcon 리스린 2011.02.10 04: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F 좋은장르이긴한데 뭐라고할까 ...

    영화에서는 상당히 좋아하는 장르인데

    애니에서는 좀피하게되는 장르군요 ..

    • BlogIcon 나노하. 2011.02.13 18: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SF 장르는 건담 이후로 사실 거의 획일화 되있다시피 하니까요.
      저도 사실 SF 장르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플라네테스는
      SF 뿐만 아니라 드라마적 요소가 생각보다 많아서 흥미롭게 시청했던 것 같습니다.

  • BlogIcon 라이가 2011.02.14 0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얼마전에 이웃분께서 적극 추천해주신 작품인데 나노하 님도 다뤄주셨네요. 시간이 나면 한 번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 BlogIcon 리엔노아 2011.02.22 0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음 들어보는 작품이로군요...
    2003년이면 제가 중2때로군요. ㅇㅅㅇa

    8년전 작품!

    • BlogIcon 나노하. 2011.02.23 16: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꽤 고전이지만 최근에 BD 작업 리테이킹까지 거친 덕분에,
      2003년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입니다.
      요즘 볼만한게 없다면 한번 쯤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 BlogIcon 흑갈 2011.02.22 0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코드기어스의 타니구치 고로 감독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 애니더군요. 저도 기회가 된다면 꼭 보고 싶습니다. :)

    • BlogIcon 나노하. 2011.02.23 16: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타니구치 감독 초창기 시절 특유의 연출력도 볼 수 있는 데다가, 작품 스토리 구성 역시 치밀하기 때문에 타니구치 감독의 팬이라면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 BlogIcon Midway_17kHz 2011.02.24 15: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_ _)
    이제까지 플라네테스를 '만화책'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간만에 생각이 나서 다시 읽기시작했는데
    마지막권 서비스 페이지에서 보지못한 등장인물이 나오고
    '애니 오리지날 케릭터'라는 말이 있더군요.

    그말을 듣고 애니화 되었다는 걸 직감했지요.
    완전히 '우주 진출에 당연한듯 성공한' 시점의 만화가 아니라 그 이전 시대의 만화라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아무래도 애니가 더 내용이 많은거 같은데 한번 찾아볼까 싶네요. '지구에서 우주로 진출'한게 아니라 지금 이땅도 '우주'라는 - 어쩌면 당연한 사실 그자체로 감동을 주는 만화여서 기억이 많이 남습니다.

    • BlogIcon 나노하. 2011.02.24 18: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플라네테스의 경우 인지도 자체는 애니보다 만화책이 더 높은 게 사실입니다.
      애니도 완성도가 절대 뒤떨어지는 편이 아니었는데, 작품 성격상 조금 묻힌 면이 있습니다.
      제가 원작을 본적이 없어 단언하기는 힘듭니다만, 주위 평론을 들어보면
      원작은 철학적인 요소가 많이 강조된 반면, 애니는 해학적인 요소와
      감동을 주는 드라마적 요소의 비중이 조금 더 높다고 합니다.
      원작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오히려 재미가 2배가 될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 요수아 2011.03.26 1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플라네테스 정말 재미있게 봤던 작품입니다.
    생각할 것도 많고 느끼는 감동도 많았던 작품인데 어느덧 8년이나 지난 작품이 되어버렸군요.
    저 같은 경우에는 2006년도에 봤는데 그 때의 감동이란..T^T
    이와 같은 작품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요즘에는 솔직한 마음으로 그림체들이나 내용들이 제 마음에는 그다지 확 와 닿는 작품들이 없어서 아쉽습니다..T^T

  • 충격선생 2011.03.28 10: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저 역시 플라네테스 이후 문라이트 마일을 보면서 뭔가 더 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얼마전에 우주형제라는 만화를 접하게 되면서 또 한번 그 느낌을 알게 되었습니다. 웃기면서도 현실성도 있는게....플라네테스와 문라이트마일과는 다른점이라면 정말 근미래의 이야기라는 점 정도 이네요...앞으로 10년정도...

  • kongalu 2011.06.03 19: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작품 참 명작이죠.

    세번이나 봤는데도

    아직도 그 재미가 남아있네요^^

  • 개구기 2011.06.23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카피~

    명언이줭~